생활의 중심

지난 주말, 끝없이 뻗어간 대화는 특정한 주제라고 할 만한 건 딱히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문화로 집약되었다. 문학, 영화, 미술, 삶(더 정확히는 살 곳)..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쏟살같이 지나갔는데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틈 없이 가득 채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얘기들이란 대체로 희망에 가까운 동시에 지금이었으며 앞으로의 불특정한, 그렇지만 반드시 만들어질 (혹 만들어 나아갈)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에 살며 나는, 닥치는 대로 집어먹는 욕심 많은 아이처럼 문화를 접수했다. 영화, 전시, 공연을 비롯해 옛 서울의 흔적을 시간 나는 대로 더듬으며 내가 서울에 살고 있음을 거듭 확인했다. 행여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나 감독의 특별전 같은 걸 놓치기라도 하면 짙은 아쉬움에 더 자주 웹을 들락거리며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사라져 갔다. 인지하면서도 멀어져가는 나를 차마 붙잡지 못한 건, 현재를 회피하려는 가장 손 쉬운 선택이었다. 나에겐 접수창구만이 무수히 존재했고, 정작 접수된 수많은 거리들을 사소한 하나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 그건 내가 가장 손쉽게 외면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접수창구에서의 시간만으로도 나는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둘, 채워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는 그대로의 허무임을 알아챘을 때,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짐짓 모른 체하다 이제야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을 때 그 어디를 둘러봐도 나는 없었다. 그저 탐욕스러운 아이, 허겁지겁 먹어치울 줄만 아는 수동적인 아이만 남아있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있다고 할 수 없는 나였다. 왜냐하면 철저히 외면해 왔지만 내가 원하는 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 분명했기 때문이다. 

일하며 사귄 후 내적 공감대가 크게 형성된 y가 곁에서 꾸준히 자극제가 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삶이 이대로 흘러가버리도록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주말, y와 s의 만남에서 s가 내게 말했다. 생활의 중심에 그것을 가져다 놓으라고. y처럼 그게 생활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이었기에 내 치명적인 결함을,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s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생활의 중심을 처방전으로 내렸다. 과연 약사다웠다. 그 말이, 하루 이틀 지나도록 계속 머릴 맴돈다. 조심스럽게 내 등을 떠미는 그 처방에,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그것에 마음이 크게 안정되고 있음을 느낀다. 생활의 중심, 그래, 그 많은 접수창구는 모두 허위다. 허위는 줄이고 중심을 견고히 하자.


2013/11/26 헤이리 포레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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