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른 이유는 아니고, 샤워할 때 손으로 빨곤 했던 속옷이 별로 깨끗하게 빨리지 않는 것 같아 이제는 잘 안 빠는데 샤워하는 거에 비해 집 세탁기 돌아가는 주기가 늦어 속옷이 한두 개씩 모자라곤 했다. 그래서 엄마랑 시장에 간 김에 속옷을 사러 상점에 들렀는데 내 키를 슬쩍 본 주인 아주머니가 100은 입어야겠네, 하길래 문득 내 사이즈를 생각해 보니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외투처럼 들춰볼 수도 없고. 그런 한편 또 생각을 해 보니, 내가 내 속옷을 사려고 직접 상점에 들러본 기억이 없었다. 늘 엄마가 사 주거나 속옷이 부족한 거 같으면 같이 사는 누나가 마트에 가는 길에 사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확실치 않으니 95도 될 거 같고, 라며 지나가는 투로 얼버무렸더니 95를 먼저 내어 주셨다. 3개입인 세트였는데 하나를 꺼내 사이즈를 보며 집에 있는 속옷의 크기와 상상으로 대조를 해 보았는데 얼핏 될 것도 같아서 그대로 돈을 지불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막상 돌아와서 집에 있는 속옷을 꺼내 보니 죄다 100이었다. 다시 새 속옷 하나를 꺼내 사이즈를 비교해 보니 조금 작긴 했다. 그래서 바꿔야 하나 그냥 입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엄마한테 슬쩍, 속옷도 빨면 줄어드나? 하며 물었더니, 그럴 수 있지, 라길래 그럼 바꿔야겠다고 엄마한테 얘길했다. 그랬더니 오늘 또 장에 나가니까 바꾸면 된다고 쉽게 응수해 줘서 맘 편히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심, 사실은 성격상, 한 번 산 물건을 바꾸는 걸 꽤나 불편해 하는 편이고 더군다나 속옷이다 보니 더욱 그러한 마음이 든 차에 엄마가 바꿔준다고 하니 맘이 편해진 거였다. 그런데 오후가 되어 시장에 다녀온 엄마에게 속옷은 바꿨어? 라고 물었더니 그럼, 근데 미안해서 본인 속옷도 만 원어치 샀다고, 아주머니가 그냥 바꿔주더라면서 참 친절하다고 하는 게 아닌가(게다가 바꾼 속옷이 BYC라며 더 좋은 거 아니냐는 말까지 덧붙였다). 나는 아무 말 안 했지만 정말 이런 마음씨를 지닌 엄마가 너무 좋다.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 나와 삼촌 때문에 서둘러 할머니 제사를 지내고 나서는데 까만 봉지에 오늘 맞춘 떡과 매형이 좋아하더라며 문어를 담고 버스에서 먹으라며 허겁지겁 귤을 막 던져 넣어주는 엄마가 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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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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