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글 146건
2013.09.09 어떤날
2013.09.05 복잡한 마음
2013.08.31 ㄱㅗㅇㄱㅏㄴ
2013.08.30 그래도 삶
2013.08.28 여행의 기록 그리고 별
2013.08.28 Missing You
2013.08.21 여행을 위함
2013.08.07 
2013.08.04 그러니까, 현실
2013.07.23 RAIN
어떤날

눈을 뜨니 7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었다. 오랜만에 산에 다녀온 기분이 몸으로 느껴지는 아침이다. 지리산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그곳에서는 하루 온종일 걸어도 걸어도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게 여겨져 다시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 기분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일상의 공기는 너무도 당연하게 뻐근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일어나 양치를 하고 물을 마시고 맥을 연다. 요즘은 도통 맥북의 전원을 끄지 않는다. 늘 잠자기 모드에 두고 잠을 자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사용을 하고 다시 잠자기 모드에 둔다. 부팅이 느려진 탓도 순간에 충실한 탓도 어쨌거나 조금은 더 기록을 하자는 이유도 있다. 무엇 하나 따지고 보면 중요하지 않은 이유들. 

여행에서 돌아와 본 영화들, <설국열차>와 <일대종사>에 대해 짧게 기록을 하고 더듬더듬 홍세화를 읽는다. 음악은 영화 <시네마 천국> 사운드트랙. 잠결에 들은 김혜리 기자의 팟캐스트 - <늑대아이>를 보고 싶었으나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어젯밤 오랜만에 지어 되게 된 밥에 라면을 끓여 아침을 때우고는 다시 더듬더듬 홍세화를 읽는다. 

빠리, 그곳은 여전히 내게 환상 속에 머물러 있다. 동경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포함한 예술가들의 향이 이곳 내 방까지 진동으로 전해진다. 향의 진동, 그에 순순히 따라간다. 그리하여 까뮈를 펼쳐 살인의 충동을 대리 경험하고, 리마에서 10킬로 남짓 떨어진 새들이 죽어가는 해변에서 미래를 낙관하는 동시에 부정하고는 고개를 젖는다. 모두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이다. 하지만 홍세화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그의 빠리에서의 생활은 그 어느 환상에 비길 만한 것이 아니다. 그는 실제를 경험했고 생계를 유지해야 했으며 어떻게든 돌아오지 못하는 조국을 멀리 두고 이중 삼중의 이방인으로 그곳 - 내가 말하는 낭만의 빠리 - 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어디에나 生은 존재한다. 

시골에 갔던 매형이 돌아와 점심을 먹자고 해 여전히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마지못해 집을 나선다. 무엇을 먹을까. 동네에 5년을 넘게 살아도 반복되는 고민이자, 언제나 명쾌한 답이 없는 질문이다. 돈까스나 먹자고 했다. 실은 밖에 나오니 맥주 한 잔이 마시고 싶었던 건데 마침 눈에 띈 '온달돈까스'가 추억의 이름으로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간판에는 Since 1980 이라 적힌 글자가 식당의 과거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뻥이 아니었다. 이 동네에서 자란 대학 동기 몇은 초등학교 시절 이곳에서 생일 파티를 하곤 했고, 그랬던 아이는 친구들에게 약간의 자부심을 내비칠 수 있을 만큼의 식당이었다. 그 모습 그대로 - 사실 위치를 조금 옮기긴 했지만 - 온달돈까스는 돈암동 구석에 자릴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점 한 점 달디 단 돈까스를 썰어 먹으며 내가 기억하는 이곳에서의 추억을 매형에게 이야기했다. 

단순히 돈까스집이라고는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의 메뉴를 자랑하고 있는 온달돈까스는 동기들끼리 소소히 모여 술 한잔 마시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실로 버라이어티한 메뉴들은 늘 우리의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하나 하나 실제하는 그 메뉴들은 맛을 떠나 우리에게 한 움큼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온달돈까스가 오랫동안 이 동네에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여대 근처라 그런지 유독 유행에 민감하여 대부분의 상점들이 금세 다른 얼굴로 탈바꿈을 하곤 하는 동네에서 이토록 오래 자신만의 모습으로 자릴 지키고 있다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식당 안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돈까스를 썰고 있었다. 막걸리를 부어 마시며 돈까스를 썰고 계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도 예전 이곳에서 자식의 모습으로 혹 친구들과 지금과 같이 돈까스를 썰었겠지. 

이런 생각에 나는 더더욱 온달돈까스가 정겹게 여겨졌다. 오래 지속되는 장소는 뜻하지 않은 먼 시간을 연결해 주는 힘이 있다. 

배가 부르기도 했지만 내 입에는 단 돈까스 세 점을 남기고 - 맥주는 다 마셨기에 - 가게를 나서 시장으로 갔다. 매형이 저녁 먹을거리를 사가자고 했다. 나는 지난 밤 내가 한 된 밥이 충분히 남아있다고 했다. 그래서 제육볶음용 오겹살과 야채를 사 집으로 돌아왔다. 배는 부르고, 시간은 익어가고 이대로 집에 머무르면 한참 늘어질 것 같아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서점에나 들러 책이나 훔쳐야지. 

버스정류장 바로 앞 신호에서 앞문에 노크까지 하고도 매몰차게 승차를 거부당한 나는 그 자리에서 짧게 메모를 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에게 여유를 주는 건 무엇일까. 돈, 그것뿐일까. 차를 가지게 되어도 버스나 기차, 전철을 많이 타겠지만 무엇보다 그것들을 타는 불편(실은 불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는 서글픈 위안이 든다. 

생각할수록 우리 사회에서 안전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애매모호하기만 하다. 그리고 내가 대중교통을 피하고 싶은 가장 치명적인 위치에도 그것이 작용된다. 물론 지긋지긋한 서울에서의 운전하는 마음을 어쨌든 조금은 이해한다는 전제 하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다수의 운전자들은 불친절하다. 여기에 대해선 한치의 굽힘도 있을 수 없다. 특히 택시가 가장 선두에 있으며 버스가 그 뒤를 견고히 지키고 있다. 운이 좋게도 기차와 전철은 승객과 직접 대면할 일이 없으니 여기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택시는 자주 타지도 않지만 탈 때마다 느끼게 되는 불쾌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와 달리 버스는 타면 전철보다 편리한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늘 나와는 상관없는 불쾌를 겪곤 한다. 그것은 불친절과 연관이 되어 있기도 하고 운전사의 여유와 관련이 있기도 하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버스정류장이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버스가 그곳을 다닌다는 상징에 가까웠지 반드시 그곳에서만 버스가 승하차를 하는 건 아니었다. 필요에 따라 자신의 집과 조금은 가까운 곳에 편의상 세워주기 십상이었고 그런 아무것 아닌 편리함이 시골에서의 버스의 일상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우리가 도시에 살며 약간의 인간적 면모에 지나치게 감동하는 것도 그것이 원래 인간의 모습이지만 그것을 잃어버린 도시에서는 드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사회는 이상하게 변모되었다. 물론 그들은 말할 것이다. 그러다 사고 나면 모조리 내 책임이오.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 하오. 지극히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시의 일상과 자본의 치부와 인간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개개인의 불쾌한 면모를 말하고 싶다.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서로 몸을 부대끼며 인간의 탈을 쓰고 지금의 도시를 살아간다는 건 


종각에서 내려 반디로 향했다. 오후의 햇살이 맘에 들었다. 좋았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실내인간>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크게 끌리지 않았다. 소설 코너로 가 지난 밤 생각해 두었던 박형규 교수가 번역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집어들었다. 과연, 마치 성경인 듯한 편집이 우선 눈길을 끌었다. 요즘 흔치않은 이단 구조에 종이의 재질 또한 보통 3권으로 꾸려지는 소설을 한 권에 담기 위한 방책으로 최대한 얇은 것으로 선택되었고 자간 또한 서로의 허리를 찌를 정도로 깊숙이 붙어있었다. 그와 상관없이 한 페이지를 읽어보았다. 어떤 블로거의 평대로 부드러운 번역이었다. 작년에 읽은 열린책들 판본과 그 자리에서 비교를 해보았다. 더 부드러웠다. 마치 성경과 흡사한 종이 재질만큼이나 더 부드러웠다. 그러고 보니 떠올랐다. 박형규 교수가 어느 출판사에서 톨스토이 전집 출간에 번역을 도맡게 되었다는. 이력을 봐도 도스토예프스키보다는 톨스토이 쪽에 가까운 듯했으나 매끄러운 번역이 맘에 들어 단 한 권 남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서점을 방황했다. 가즈오 이시구로, 톨스토이, 몇 권의 미술서적들, 아쉬운 시집 코너.. 박형규 교수의 번역본 러시아 소설들을 더 찾아보고 싶었다. 특히, 다시 읽고 싶은 <죄와 벌>. 영풍문고에 갔다. 늘 영풍문고는 두 번째나 세 번째로 오게 된다. 마땅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 세 곳 중 가장 어색하다. 

많은 시간을 머무르지는 못하고, 박형규 교수의 번역본이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집어들고는 조금 읽어본 다음 계산을 치르고 지하를 빠져나왔다. 9월, 종로의 낮은 소소한 젊음으로 활기에 차 있었다. 나무 그늘 밑에 앉아 가방에서 펜을 꺼내 방금 산 두 권의 책 앞에 짧게 메모를 했다. 


지난 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끊임없이 그를 그리워했다. 결국, 그가 부르는 손짓을 따라 여기까지 왔으니 올해에는 다시 그를 만나기로 한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물론,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단연코 거짓말이다. 기분이 허해질 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음을 느낄 때 고전만큼 내게 적절하고 묵직한 답을 주는 게 있을까? 그와 카뮈, 톨스토이.. 남은 올해를 켜켜이 수놓을 소설들을 읽자. 읽고 또 읽자. (가난한 사람들, 가을의 문턱 종로에서) 


무엇이 아쉬웠는지, 꼰 다리의 경사를 이기지 못한 반바지 속 아이폰이 스르륵 흘러내려 보도블럭에 얕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이미 덤덤해진 충격은 아이폰이나 나나 마찬가지, 일어나 종로2가 쪽으로 걸었다. 그러니까 무엇이 아쉬웠는지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아차 싶어 금세 뛰쳐나와 집엔 걸어가기로 하고 대학로를 향해 발길을 틀었다. 인사동, 여전히 사람이 많은 그곳 옆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아트시네마가 여전히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자릴하고 있었다. 고다르의 영화를 챙기지 못한 게 새삼 아쉽게 생각되었다. 씨네바캉스도 한 편 못 건졌는데,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 

기형도 시인이 즐겨 다녔다던 골목을 걸으며 그의 마지막 장소가 된 옛 극장 건물을 슬쩍 올려다 보는 일은 그곳을 지나는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한동안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던 시인이, 그의 시가 진한 그리움이 되어 옷깃을 스친다. 재빨리 그곳을 벗어난다. 

여행에서 돌아와 한 번도 다시 읽지 못한 여행의 기록을 천천히 읽으며 한적한 종로의 뒷골목을 걷는다. 창경궁 돌담길을 따라 굽이치는 오후의 시간을 실감하며 약간의 추억을 더듬어본다. 그리고 돌아올 추억 또한 더듬는다. 대학로, 서울대학병원, 학림, 마로니에공원, 창경궁, 휴먼코미디, 스시캘리포니아 


서점의 날로 기억되어 마땅할 이날 오후, 대학로 알라딘에 또 들러 네 권의 책을 더한다. 

<당신들의 천국>,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섬>, <침이 고인다> 


가방에서 한동안 짤랑거리던 동전을 꺼내 지갑에 남은 천 원을 보태 세븐일레븐에 들어가 맥스를 산다. 조금 더 걸어 서울시장 공관을 지나 혜화문 아래 작은 쌈지공원에 앉아 김애란을 읽는다. <도도한 생활>, 여자 박민규라 말해도 좋을 만큼 김애란의 글엔 익살이 가득하다. 다만, 웃음만 묻어나는 익살이 아닌 찌든 생활고와 불가항력적인 생의 구조가 함께여서 더욱 깊게 파고든다. 그만큼의 여운이 남는다. 


'원래 그렇다'는 말 같은 거, 왠지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애란) 


이 모든 하루가 가기 전에 내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분리수거. 그런데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는 사이 매형이 이 모든 하루의 끝을 마무리했다. 뭔가 허전해 털썩 주저앉아 켜져있는 티비에서 나오는 1박2일을 맥없이 쳐다본다. 문득 어디론가 한가득 친구들과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복잡한 마음


누구에게도

아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실이 

오직 사실이 하나, 있다 


오로지 

둘 혹은 하나만이 알고 있는

서글픈, 그래서 서글픈 

그 사실 


나 혼자서 되뇌이네 

그대, 그대, 

그대 


하나의 사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실, 하나의 


이유는 

다름아닌 존재였다 

존재할 수 없을 거란

존재였다 


존재였다

존재할 수

없을 거란 

ㄱㅗㅇㄱㅏㄴ

베를린에서 묵었던 호스텔 이스트세븐은 그동안 다녀봤던 많은 호스텔 중 가장 매력적인 곳이었다. 

우선, 직원들이 너무 친절하며 친근하고 숙소는 청결했으며 무엇보다 공동 공간인 부엌과 밖으로 나있는 정원이 그 어느 곳보다 특별했다. 커피나 맥주도 싸게 팔고 있었고, 자전거도 대여를 해줘 편리성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하루 종일 부리나케 싸돌아다닌 날이었다. 원래 늘 걷다가 자전거를 타면 귓볼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에 체력적 고려 없이 마구 타게 되므로 반드시 지치게 마련이다. 그렇게 지친 채 숙소 방향의 골목으로 진입해 천천히 가고 있는데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ㄱㅗㅇㄱㅏㄴ 


SIGMA DP2

 

누가 보더라고 이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유럽 대부분의 상점들이 그렇듯 이곳도 일찌감치 영업을 마친 뒤였다. (그렇다고 아침에 일찍 열지도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역시나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스치는데 야외 테이블들이 제모습을 갖추고 있고, 카페 안은 은은한 조명들로 밝혀져 있었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나왔지만 커피나 한 잔 할 생각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아담하게 짜여진 가구들, 한글로 된 책 몇 권을 포함해 약간은 무질서하게 진열된 책들, 벽에 견고하면서도 외롭게 걸린 전구들, 카페의 시작을 알리는 커피향, 순간, '공간'이 꽉 차게 다가오며 가슴이 훈훈해졌는데 그럴 새도 없이 들려오는 말 


안녕하세요 


역시나, 주방에서 카페에 들어서는 날 보며 모던하지도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게 생긴, 약간의 질서를 이룬 수염이 인상적인 한국분이 인사를 건넸다. 


커피 한 잔 주세요 


2유로를 건네며,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로 갖다준다는 말에 밖으로 나와 1인 테이블에 자릴 잡았다. 

베를린의 아침은 시작되고 있었다. 가까운 전철역에서 쏟아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사람들이 빠져나오며 골목을 스치고 있었고, 주변의 상점들도 하나둘, 눈을 뜨고 있었기에 비로소 


아침이구나 


백팩에서 황병승의 시집 <육체쇼와 전집>을 꺼내 한 편 또 한 편 읽고 있는 사이 작고 앙증맞은 잔에 커피를 담아, 수염이 인상적인 주인이 앞에 떡하니 다가왔다. 손님은 나밖에 없었고, 우린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서서 대화를 이어가던 주인은 어느새 손 닿는 곳의 의자를 끌어와 앉아 있었고, 톤은 동일했지만 대화의 방향은 조용히 그리고 넓게 뻗어나갔다. 

나로선 독일에 정착한 지 13년째라는 주인과의 대화가 너무 신나는 일이었고, 주인은 그저 아침에, 오랜만에 모국에서 날아온 사람을 보니 약간은 반가운 기색이 있는 듯했다. 


카페의 전반적인 심상찮은 분위기는 다름아닌 '건축'을 전공했다는 주인의 안목에 있었고, 주인이 말해줘서 알았지만 카페 인테리어의 많은 몫이 바우하우스 시절의 것들이라 했다. 무엇을 하시냐, 카페만 하시냐, 전공은 안 살리실 거냐, 고 묻는 내게 주인은 답했다. 


지금 집을 하나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다락이 있는 집을 하나 구해 그 집을 '전공을 살려' 개조를 할 거고 그 과정을 책으로 만들 예정이다. 그래서 목요일이면 직원에게 가게를 맡기고 하루 종일 그 일에 몰두하고 있다. 


배경이 베를린이라 그런지 몰라도, 한치의 망설임없이 약간은 자신에 찬 주인의 포부를 들으며 조금은 부러워했던가. 


여행서 론리플래닛을 좋아한다고, 무엇보다 론리의 좋은 점은 객관적 정보로 가득한 것이라고. 그래서 자신도 어쭙잖은 감상보다는 정보 위주의 책을 쓸 거라고. 


우린 감상 위주의 말 뒤에 '그건 곧 부끄러워지니까요'라며 맞장구를 치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카페 공간이 나에게만 멋져 보였던 건 아니었다. 숙소의 같은 방에 머무르고 있던 미국인 여성이 어느새 바깥 테이블에 자릴 잡고 있었는데 그 분이 날 알아보더니 베리굿카페, 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여성이 건축에 관심이 많아 카페에 처음 들렀을 때 바우하우스 인테리어들을 알아보며 주인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바우하우스에 들르기 위해 데사우에도 간다고. 


여튼 진하면서도 맛있는 그곳의 커피를 한 잔 더 얻어마시고 일어섰다. 



SIGMA DP2


SIGMA DP2



다음 날, 베를린을 떠나는 날이었다. 공간에 한 번 더 들르고 싶어 숙소에서 아침을 먹지 않고 나왔는데 아직 오픈 전이었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기다릴 시간은 없었고 아쉬운 마음에 그곳에서 읽었던 황병승 시집 <육체쇼와 전집>을 문에 걸쳐두고 그곳을 떠났다. 





그래도 삶

사무치도록 불특정한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 아침이다. 서울엔 비가 가벼이 내리고 내 마음 이미 그 비에 가득 젖어 무겁고 축축하다. 근거없는, 불행했던 고뇌의 시간들이 독이 되어 스며들곤 하는 때때로의 순간이 생을 자각하게 하고, 대체 지금 무얼하고 있느냐, 고 꾸짖는 듯해 몹시 부끄럽다. 


우린 지금에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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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문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짙은 회색의 높낮이가 다른 수많은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밀집된 장소를 만나게 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이곳만큼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곳이 있을까?

이곳만큼 아해들이 뛰어놀기에, 특히 숨바꼭질하기에 좋은 곳이 있을까? 

이곳만큼 1930년대 독일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논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있을까? 

 

자전거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선 제법 넓은 공간에 놀랐고, 자전거를 세워둘 - 정확히는 안전하게 매어둘 - 장소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렸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이곳 일대를 둘러보고선 흐뭇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메모리얼은 잔잔히 읊조리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삶 - 이라고 


누구나 그곳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명상을 하고, 

핫도그를 먹고 물을 마시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과거를 추억하고, 

역사를 반추하고, 


지금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삶 - 이라고 



다만, 한 가지

나는 다른 생각을 조금 했다. 

홀로코스트는 분명 인류 역사에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홀로코스트가 이렇게 모두에게 기억되고, 

누구나 같은 마음으로 반성을 하고, 

되새기는 것처럼,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주목을 했으면 하고, 

국제 '사회'라고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라는 인식으로,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주목을 좀 했으면 하고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각자의 입장에서 옮고 그름을 따지는 지루함 말고, 

인간적으로, 한 번쯤 생각을 해보자고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 추체험 속에서 홀로코스트를 슬퍼하노라면, 두 가지 개운찮음이 그 슬픔을 방해하거나 배가한다. 첫번째 개운찮음은, 그런 끔찍한 집단폭력을 겪은 이들이 또 다른 집단폭력의 주체가 됐다는 사실에서 새어나온다. 20세기 후반 이래,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21세기의 이 시점에서, 유대인은 더 이상 인종주의의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종 위계의 맨 위에 있다 여기는, 속으로 그리 여길 뿐만 아니라 그런 믿음을 공격적으로 드러내고 실천하는 최악의 인종주의자들이다. 

또 하나의 개운찮음은, 가장 끔찍한 비극조차 기꺼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인간의 본성을 지켜봐야 하는 데서 나온다. '홀로코스트산업'이라는 말은 이 인류사의 비극을 이용해 치부하는 일부 유대인 장사꾼들을 겨누고 있지만, 그런 교활함과 비윤리성은 인간세상의(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의) 한 작동원리이기도 하다. (도시의 기억, 고종석) 


여행의 기록 그리고 별

요즘은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사진을 찍고, 누구나 그것들을 자유로운 형태로 발행하기 때문에 얼핏 보면 굉장히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나는 서점에 갈 때마다 늘 수많은 여행기들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나의 경우엔 평생 살며 단 한 권의 책 정도만 펴내고 싶기 때문인데, 어쩜 그렇게 잘들 책을 내는지 우둔한 내 머리와 빈약한 내 가슴으로는 도무지 쉬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특히나 이번 여행은 이곳에 기록을 좀 남겨야지, 하는 생각에 시작은 했지만 막상 하려고 보니 여행 동안 했던 메모를 정리하는 일, 그로써 기억을 떠올리고 복원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 사진을 정리하는 일 등 무엇 하나 쉬 되는 게 없다. 시간이 필요하고, 끈기가 필요하고, 단단한 정성이 필요한데 일상의 틈 안에서 그것들을 한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그래서 아마도 이곳에 더디게 펼쳐질 여행의 기록은 시간의 순서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이고, 사진은 글의 내용과 적절하지 않거나 아예 첨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며, 심지어는 이번 여행과 관련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결국은 여행으로 통할 것이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하나둘 짐을 채우고 덜어냈다. 일련의 과정, 늘 하나의 출발 배낭을 완성하면 놀라곤 한다. 짐이 너무 없어서. 없는 짐에 보통 책이 절반인 경우가 많으니 나야말로 전자책이 필요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으나 도무지 맛이 안 나는 걸, 읽는 맛이 안 나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이번에도 책으로 가득 채웠다. 아쉽게도 노트는 뺐다. 수차례 경험상 아이폰으로 주로 메모를 하기 때문에. 


론리플래닛 베를린, 론리플래닛 암스테르담,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육체쇼와 전집(황병승), 네덜란드(주경철), 렘브란트(마리에트 베스테르만) 


낮은 소리로 친구와 통화를 하고 이제는 나서야지 싶어 집을 나선 시각이 9시가 넘었다. 이륙시각은 자정 5분 전. 이상하게 언제부턴가,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시간 계산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약속시간(또는 기차시간이나 등등)에 늦는 걸 무척 싫어하는데 요즘은 취미가 지각일 정도로 어디서나 늦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약간 비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이미 몇 차례 이용해본 시각의 항공편이라 늦은 시각에는 공항이 어느 때보다 한산한 걸 알고 있고, 그래서 결코 비행기를 놓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메모장에도 이렇게 기록을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뛰어노는 어린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다. 


공항역에 도착해 보딩패스를 받으러 갔더니 아시아나 직원이 짜증섞인 눈과 말투를 내던진다. 이스탄불이냐고, 보딩 마감이 11시 15분이니 뛰라고. 얼른 가라고. 그렇게 1분만에 보딩패스를 받고(짐 따윈 부치지 않으니까) 출국심사를 끝내니 10시 55분, 에어트레인을 타고 게이트로 가니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가벼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줄지어 하얀 터키항공 여객기로 속속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대열에 합류해 여객기 속으로 빨려들어가 자릴 잡으니 11시 17분 


바뀐 담요와 기내물품들이 왠지 반갑구나. 또한 왠지 터키 냄새가 나는 듯한 담요는 챙길 수밖에 없는 색상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를 제법 많이 타봤지만 이륙하는 줄도 모르고 곯아떨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신없이 자다 일어났는데 여전히 여객기가 서 있는 듯해 한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안전벨트 사인이 꺼진 뒤였다. 밥이 나오고 있었고. 


그래, 지금 졸리는 만큼의 무게를 지고 있었던 거야, 일상에서의 나는 


얼마쯤 날았을까, 날아온 거리가 앞으로 날 거리보다 더 많을까, 생각을 하며 무심코 창밖을 보았다. 


많이 날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날고있다. 아, 바로 옆 북두칠성!!!! 


3분 뒤 


유성 하나 


2분 뒤 


유성 둘 


디스플레이에 익숙한 도시들 - 두바이, 델리, 뭄바이, 우루무치 - 이 눈에 띈다. 


20분 뒤 


유성 셋 


기내의 풍경 

마치 중국인(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처럼 기내식을 흡입하는 청년이 바로 옆에 앉아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락을 하고 있다. 내가 앉은 라인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들은 평범한 정도다. 우리나라처럼 과잉친절도 아냐, 그렇다고 인도처럼 대충도 아닌 그저 평범한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딱 편하다 이 정도가. 앞엔 모자母子가 있다.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엄마의 사랑이 비행 내내 느껴진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 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마냥 나이가 들어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나보다 한두 살 많겠지. 다른 특이한 점은 찾아볼 수 없다. 최고의 특이라고 한다면, 디스플레이에 담긴 모든 영화가 터키어로 더빙이 되었다는 정도? 그나마 <스토커>는 자막이라도 있지 다른 영화들은 그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아 그리고, 기내가 원래 이렇게 조용했나 싶을 정도로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니까 이륙을 했을 때 곤히 자고 있어서 깨고 나서도 아직 이륙을 안 한 줄 알고 한참을 어리바리했으니까. 그나저나 이 많은, 기내에 가득한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혹시 나와 같이 베를린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까? 


살며 겪는 많은 부분에서 이제는 절대성보다 상대성에 주목하게 된다. 무조건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에 흥분을 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고, 공항에만 가도 설레던 무수한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긴 가는데 '어디'에 가느냐가 중요하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써도 '어떻게' 쓰느냐에 보다 관심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내 여행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 걸까. 


Missing You

햇살마저 자유로운, 무책임할 정도로 덥지 않은 이곳은 베를린 - 역사의 경계선입니다. 한쪽에선 히틀러 시대의 과거를 장벽과 함께 만천하에 드러내고, 또 한쪽엔 소니센터가 우뚝 솟아있는, 이곳은 베를린 - 기억하는 도시입니다. 이제는 기억될 도시가 되겠지요. 

돌아볼 행복했던 시절은 여행의 일상에서나 가능하니 현실의 일상은 비극인가요?


늘 건강하십시오. 



과연, 누군가에게 쓰고자 했던 - 아마도 엽서 - 글인데 막상 쓰고 보니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한 경우다. 엽서라는 건 상대를 떠올리고 그를 생각하며 써야하는 게 아무래도 순서인데, 하긴 떠오르긴 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다. 


따뜻한 그 분을 떠올리며 적기 시작했으나 막상 다 쓰고 쓴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그 분에게 보낼 성격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여행을 가면, 주로 혼자 다니다 보니 시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지고 시간이 꽉 채운 지갑마냥 든든하게 여겨지고 시간이 그래서 아주 넉넉해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많이 있다. 특히, 그럴 때면 엽서나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데 물론 이는 내가 좋아하는 많은 작가들의 서신교환을 크게 동경하고 있는 평소 내 마음과도 일치하는 희망이자 욕구이다. 

닥치는 대로, 미술관을 다니며 많은 엽서를 샀다. 물론 마음에 드는 걸로 우선 산 뒤 엽서를 보낼 만한 사람을 떠올린다. 주소가 있으면 가볍게 초안을 잡은 뒤 정성을 들이지 않은 글씨로 휘갈겨 한 통 또 한 통 엽서를 완성, 모아서 부칠 곳을 찾는다. S. KOREA 라고 크게 쓴, 그것들을 부친다. 


엽서는 참 매력적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편지처럼 진득하진 않아도, 간편하면서도 그 짧은 문장에 무언갈 담아낼 수 있고, 무엇보다 엽서의 앞면에 엽서를 보내는 장소를 상징하는 뚜렷함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할 여행에서도 엽서를 써야지. 그리고 부쳐야지. 

아, 물론 부치지 못한 - 지금처럼 - 엽서의 부스러기들도 남아있을 것이다. 


여행을 위함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프라하, 그러니까 2009년부터 외로운 도시여행자가 되었다. 

길어야 열흘 남짓 떠날 수 있는 여행을 온전하다 부를 순 없지만 

길어야 무조건 '맛'인 것 또한 아닐 것이다. 


b(erlin)와 a(msterdam)의 이야기를, 본 그대로 쓴다기보다 

되는 대로 써 보기로 한다. 

이전 어떤 여행보다 일기를 많이 쓰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베를린에서는 자전거를 많이 탔기 때문이고 

암스테르담에서는 맥주를 많이 마신 때문이다. 


여행을 하며, 든 많은 생각 중 불현듯 떠오른 하나는 

나이를 먹는다고 하는 것 

그에 따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어이없는 일들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

은 단지 그 상황에 주관적 합리를 더해 금세 적응을 하는 것뿐이지

실질적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그놈의 것것것 


사진을 많이 찍은 여행도 아니고(무엇보다 이제는 사진에 대한 집착이 전혀 없어졌기 때문에) 

미술관을 바삐 다닌 것을 제외하면 그럴 듯하게 꾸려낼 이야기도 많지 않지만 

무엇도 아닌, 특색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그래서 충분히 뻔할 수도,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굳이 여행기라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방금 스쳐간 내 여행을 위하고 싶은 맘일 뿐 


2005


내게 여행을 일러준, 그 모든 상황과 사람에 감사하며


2013


여전히 버틸 수 있게, 기대 이상의 흥분으로 가득한 준비, 떠남


그리고 돌아옴


다시, 

떠난다. 


멀리 멀리 머얼리 돌아, 돌아 돌아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떠난다. 


Berlin&iAmsterdam


2013. 8. 7. ~ 8. 18. 



* 안녕, 나의 사랑 


** 멀리서 날 부르면, 소박한 엽서로 답을 하지요 


*** 그러니까 안녕, 나의 사랑 

그러니까, 현실

진작에 나는 현실의 옷을 두툼하게 입고 있었다. 

땀이 늘었고, 이제는 늘 힘이 부친다. 더위도 견디기 힘들고 추위도 마찬가지다. 

지리한 장마가 지속되고, 비의 계절이란 낭만의 단어가 무색해질 즈음 되니 비가 그친다고. 


지난 밤, 숙직을 서며 8시 뉴스를 대충 보았는데 락페스티벌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아, 뜨거운 여름밤이여.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은 정동진영화제 기간이다! 

이제, 자동차를 소유하게 됐으니 내년엔 정동진영화제에도 꼭 가봐야지. 


그렇다. 기어코 계약을 하고 말았다. 고민이 얕았던 건 아니지만, 그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짧아도 1년은 차가 없으면 안 되는 지경에 닿은 것이다. 

그런데 차, 라는 게 계약하고 출고가 되어 인수를 받으면 그만이라 생각했건만, 뭘 그리 계산(?)할 게 많은 건지. 그래서 여행 준비(그저 책을 읽는 일)를 해야 하는데 거의 손도 못 대고 구글링만 하고 있으니 무언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듯한 기분으로 가득하다. 


책도 반납할 겸, 남산도서관에 갔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곳의 냉방은 훌륭한 수준이었는데 내 기분이 그러지 못했다. 눈에 잘 박히지 않은 책을 겨우 붙잡고 있다가 결국 일찍 그곳을 빠져나왔다. 

좋아하는 분수공원에 가 남산을 바라보며 바람을 좀 쐬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 기대했는데, 나참 - 분수공원 일대를 성곽 문화재발굴조사를 한다며 모조리 통제구역으로 막아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천천히 걸어 회현역에 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했다. 숙직을 하면서 잠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를 지배했던 환경이 워낙 급격하게 전환되었던지라 몸과 마음의 여유를 전혀 가질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휩쓸리듯 밀려와 달력을 보니 이미 8월, 사흘 뒤면 여행이다. 아니, 휴가다. 

무엇보다 괴롭게 나를 지배한 건 책을 읽을 여유를 전혀 갖지 못함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서 샤워를 하고 곧장 잠에 빠져야 했고, 그나마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었던 출퇴근 시간마저 이제는 운전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으니까. 


휴가와 고스란히 맞바꿔 버린 가장 뜨거운 8월의 중간을 완전하진 않을지라도 7할의 비움과 3할의 채움으로 엮어나갈 수 있다면. 


부족한 잠을 채우려고 애만 쓰다가 침대를 빠져나와 분리수거를 하고, 슈퍼에 내려가 맥주 네 병과 프링글스 두 통을 샀다. 샤워를 하고 The innocence mission을 재생하고, 맥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지금 내가 읽을 수 있는 건 오직 카프카뿐이라고

조금씩 바람이 방을 관통하며 밤 기운을 전달한다. 

소음은 지겹고, 나는 위태롭다. 


RAIN

비의 계절


여전히 내가 쓸 수 있다는 가능성, 그대로의 현실, 억지로 고집스럽게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후아유>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밤을 채우고 있다. 동시에 잠은 비우고 있다. 

몰아치는 바람에, 옅은 비가 간간히 비좁은 열린 창틈으로 날아든다. 시원하여라. 


iamsterdam

어쩌다 보니, 암스테르담에 가게 되었다. 전혀 의도치 않았지만 결국 의도된 결과다. 네덜란드, 우리가 홀랜드라 부르는 비좁은 네덜란드 


여행을 때로 생각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동시에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하다. 

그 어떤 특별함도 부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보딩패스를 받을 때도 굳이 창가 자리를 원하지 않을 테다. 그 모든 우연, 무궁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왜? 삶은, 우연으로 채워지는 불가피한 속성을 지닌 것이기에 


그렇다. 박민규는 익살과 무쇠와 같은 뼈로 무장한 글로 우리를 웃음과 눈물의 바다로 인도한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남은, 미처 채우지 못한 카프카 전집 - 현재 솔 출판사에서 출간된, 하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완간되지 못한 - 나머지를 주문했다. 렘브란트도 같이, 황인숙 시인의 시집은 덤으로 

네덜란드를 간다는데 렘브란트를 어찌 빼놓을 수 있느냐, 양심이 고함쳤다. 

고흐.. 그럼 고흐는 어쩌라고? 


황인숙, 그녀는 가을,을 이렇게 묘사했다 


따돌려지는 듯한  

편안함


이라고 


덤이라니, 당장 주문해야 했다 


그러나 종착역은 여전히, 베를린 

오늘은 처음으로 숙소를 예약할까 싶어 론리에 딸린 지도를 펼쳤다. 대략, 중심을 확인하고 기억하며 머릿속에 심었다. 문제없다. 티어가르텐에서 수영이라도 할라치면 수영복이라도 챙겨야 하겠지 


그리운 그 이름, 

힘차게 부르면 반복해 그리워하면 곧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리움만 남은 그 이름

자, 불러보자 


*** 


*외로워질 때면 이상할 만큼 북해도에 가고 싶어진다. 아무것 하지 않아도, 태평양을 바라보며 발가벗고 온천욕을 할 수 있다면, 멍하니 태평양을 바라보며 열차 안에 머무를 수 있다면, 내 잃어버린 그 시간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딱 그리운 그만큼만 되돌릴 수 있다면


자, 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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