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글 146건
2013.04.24 (자기만의) 방
2013.02.08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
2013.01.06 캐롤라이나
2013.01.04 2013
2013.01.01 부재(不在)
2012.12.31 한 편의 영화 (2012)
2012.12.31 한 권의 책 (2012)
2012.12.25 로맹 가리 2
2012.12.21 (90) 셋
2012.12.21 (91) 영화
(자기만의) 방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당신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봅니다. 

버지니아 울프


비가 적절하게 내리는 날이다. 반가웠고, 맞기에 적당해서 또 반가웠던 '비'다. 

소주 한 병의 알맞은 취기를 안고 퇴근하는 길엔 수많은 맺혀있던 생각들이 고삐가 풀리듯 활개를 치곤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지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쉽게 말해 하릴없는 시간.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헛헛'해지는 것이다. 이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을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고, 다만 하루 빨리 독립을 해야겠다는 선명함이 있을 뿐이다. 독립이여, 맘처럼 쉽지 않은 너- 불가피함이여. 


아침. 모든 게 허무하기만 하다. 그것이 무겁게 나를 짓누른다. 발버둥칠 기력도 없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일까. 무엇을 느끼고 생을 누비고 다녀야 존재가 실감날까. 내게 살아있음이란, 오로지 진실된 낯선 공기만이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주말. 떠날 전주에서 나는 흠뻑 땀에 젖고 싶다. 전력을 다해 뛰고 걷고 영화에 집착하여 내가 그곳에 있음을 한치의 거짓없이 확인하고 싶다. 

아.. 무엇인지. 날 이토록 굶주리게 하는 건. 존재에 대한 뼈저린 자각. 이 따위는 내게서 차마 멀어지지 못한 채, 내가 방심한 틈을 타고 깊숙이 파고든다. 

괴로운, 아침이다. 비야, 퍼부어라! 


우리는 자기가 쓴 글과 똑같은 거야. 

루이제 린저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수영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물에 몸을 맡긴다는 게 까다롭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하지만 머리를 쓸 틈 없이 육체의 고단함만이 시간을 지배하는 수영의 시간이 나는 맘에 든다. 어서 빨리 호흡을 정상화 해 시간의 구애 없이 맘껏 물질을 할 수 있었으면. 


<법 앞에서>

카프카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언제였나. 아트나인에서 <레 미제라블>을 보고 이 단편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바로 읽진 못 했다. 읽으려는 사이 나는 미뤘던 사형 집행을 요청했고, 곧장 집행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목에, 끈적한 느낌을 주던 밧줄은 이내 알 수 없는 후련함으로 둔갑되었다. 나는 몸을 맡겼고, 집행을 순수히 받아들였다. 한 달. 내 수용소에서의 시간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집행인의 얼굴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미 완벽히 죽었다. 

안녕.. 


이번 전주영화제 상영작품들을 보며 눈길을 끌었던 건 단연 카프카 특별전이었다. <아무르>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작품도 있고, 실종자 또는 아메리카 란 작품명으로도 알려진 영화, 그리고 단편..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많은 선택을 하진 못 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내가 견고히 쌓아둔 카프카의 온전한 성城을 손상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고, 또 하나는 영화의 선택을 단순히 카프카라고 해서 치우쳐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하네케 감독의 작품도 어느샌가 내게 지루함이 섞여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껏 쏟아진 찬사에도 불구하고. 

유 프로가 빠진 전주는 사실 많은 고민이 앞섰는데 막상 봄이 되고, 영화제 소식을 접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이는 다만 영화제뿐만 아니라 전주에 대해 내가 느끼는 제법 황홀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전주.. 그 속으로 스며들어야지. 

상덕커리가 무척 먹고 싶다. 


예술을 알면, 문학을 좋아하면 인생이 복잡해진다. 좋게 말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최영미 


살을 빼고 싶다. 육체적 살을 뺀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 뺄 살도 없다)

허세를 제거하고 싶다. 욕망을 부정하지는 않되 욕망의 일치는 꿈꾸지 않는다. 

나는 예술을 사랑한다. 예술 이전에 문학을 사랑했고, 문학도 어쩔 수 없는 예술이기에 예술의 몸통,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영화도 그 중 하나다. 

요즘 새삼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며 내가 하는 나름 성실하다고 생각하는 기록들이 무심한 시간에 묻힌 내 생활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는 의식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쓰며 기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쓰는 글이 허세가 아닌, 글을 위한 글이 아닌 담백함이 묻어나는 생의 일부 아니 생을 관통하는 전부였으면 하는 바람이라면 그건 과연 욕심일까. 

문학을 사랑한다는 건, 문학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그로 인해 내 생의 일정 부분을, 때론 전부를 지탱하고자 한다면 그건 지금의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우려하는 허세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면 그로써 나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문학에로의 여행, 고로 나는 존재한다. 

수십 번 동일한 행위로 인해 스스로를 꾸짖으며 부정하곤 했던 일종의 버릇을 이제는 그조차 내 일부로 인정한다. 자꾸만 고꾸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게 덤덤하다. 하나둘, 걸리적거리던 가지들이 부러져 나가며 온전히 현재를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고감이 있다. 그러나 헤어짐은 있으되, 재회는 흔치 않다. 

프라하, 11월 20일

프란츠 카프카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 물어오면 나는 한치의 주저 없이 카프카 라고 답한다. 카프카는 여전히 내게 일체의 손상 없이 머무르고 있다. 


보통의 존재를 들으며 전철에서 쓰고자 하는 욕망에 휩싸였다. 성실히 이어가고자 했던 여행의 기록이 중단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하지만 언제든 이어붙일 준비가 되어 있다. 4월과 5월은 생에의 의지로 왠지 충만하다. 독서를 거의 못 하고 있어 불만인 것만 제외하면. 


꿈 같은 삶의 기록

을 나름대로 채워가며 존재를 빚어내고 싶다. 


...ing

기다림

그보다 우습고 사치스러우며 미련한 건 그 어디에도 없다. 



그녀로 인해 항로는 변경되었다. 

기다려라, 베.를.린.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
아침. 힘들게 출근을 하고선 1층 카페에 앉아 기형도 를 읽는다. 가장 보통의 존재 를 들으며.

친구녀석이 왔다. 녀석이 같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든든하고 편한지 녀석은 모르겠지. 이어팟을 귀에서 빼고, 마주앉아 '고백'을 한다.

불꽃 같은 한 주였다. 나는 희망을 보았고, 그를 따라 갔으며 이내 그 길이 절망에 이르는 길이라는 걸 알았다. 내 스스로 길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행복했다. 행복이란 이런 감정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석촌호수를 건너는 다리 가운데 서서 생각을 했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저 멀리 물을 바라보며, 지긋지긋한 도시의 소음을 무시하며. 이래도 되는 걸까. 순간 거친 흐름의 강에 첨벙첨벙 스며들어 가는 영화 <The Hours>의 장면이 떠올랐다. 버지니아 울프, 그녀 생각도 났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완벽 에 대해 생각을 다듬었다. 맙소사.

부에노스아이레스
영화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후 보고 싶었던 영화 중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가 있었다. 타이틀도 판매하지 않고,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는데 지난 달 울산에 갔을 때 친구녀석이 토렌토 란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해줬다. <해피투게더>는 왕가위 감독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작가 마누엘 푸익의 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를 읽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제목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로 하려고 했는데 막상 완성된 영화를 보니 너무 어울리지 않아 해피투게더 로 했다나.
여튼, 소설을 읽으며 마음속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깊이 새겼다. 언제나 갈 수 있을까? 그곳은 왜 지도에 박힌 장소마저 낭만스러울까. 그곳에 가면 나도 탱고를 출 수 있을까. 보르헤스가 자주 들르곤 했다는 카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전주영화제에서 봤던 에드가르도 코자린스키 감독의 영화 <녹턴>도 불현듯 떠오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기형도 시인의 죽음 20년이 되던 해 출간된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읽고 있다.

내게 완벽을 선물해준 존재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에 위태로이 서 있다.


캐롤라이나

일상日常에서의 기분을 어떻게라도 써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남향으로 활짝 열린 창에서 쏟아져 밀려드는 햇살,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울리는 클래식, 콩이 갈리는 소리와 물이 끓는 은은한 온기, 굴업도의 바람, 피나바우쉬, 갓 구운 신선한 빵으로 만든 심플하면서도 입에 맞았던 샌드위치, 언제나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커피잔과 오늘의 커피 - 도미니카와 자바. 


오늘의 일상은 유난히 멋지게 느껴진다. 


심우장을 빠져나오며 나는 아버지께 "끝내 나라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가셨지만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몰라요. 독립되고 나라의 꼴을 보느니..." 라고 말했다. 

삼일운동의 주역들은 모두 어디에 갔는가. 오늘날 우리는 백담사를 땡전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레 미제라블을 보러 우르르 몰려간다고 해서 이 나라가 진정 혁명이라도 꿈꾸고 있단 말인가. 힐링 같은 소린 개나 줘버리고 어디에 처박혀 책이나 읽자. 그래 책 좀 읽자. 


지난 연말에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린 전시 '굴업도의 바람'에 다녀오지 못한 게 일상에서 굴업도의 사진을 보자마자 후회로 다시 기억되었다. 굴업도, 그곳은 이상을 품는 것처럼 맘속에 늘 자리하고 있었는데 막상 현실의 그곳에 닿고 싶다고, 그래서 가야겠다고 마음이 다져진 건 아니었다. 왜일까. 


화창하면서도 은근한 날씨에 차가운 길을 걸으며 굴업도의 바람을 느낀다. 파도가 치듯 흐느끼며 나는 다시 또 희망 따위를 노래한다. 기분과 상관없이. 일상의 분위기에 취해. 


커피가 떨어졌음에도 일상에 가길 겨우내 계속 미뤄왔다. 집에 있는 손잡이가 부러진 드립서버 때문은 아니고 게으른 탓이지. 그래서 역엔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을 하고 심우장에서 내려오자마자 일상에 들러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찬물도 한 잔 마셨다. 일상에 올 때마다 성북동에 살고 싶은 아늑함에 잠기곤 하던 나는 오늘도 예외없이 그러한 생각을 내내 했고 실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약간의 위로를 하기도 했으며 유독 오늘의 일상이 내 맘을 잘 알아주고 이해하고 안아주는 듯한 기분에 빠져 약간의 몽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일상의 커피는 변함없이 훌륭하다. 

매일의 내게 누군가 일상적으로 커피를 끓여주었으면 좋겠다. 


새해는 모름지기 희망으로 차올라야 마땅하지만 큰 의미를 부여할수록 무수한 것들이 힘을 잃은 채 곤두박질칠 것이기에 짐짓 모른 척 방관하며 그저 이토록 매서운 날씨가 짧게는 올해, 길게는 앞으로의 5년을 은근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여 스스로의 애상의 감옥으로 기어들어간다. 


거의 5년 전을 힘겹게 떠올리고 있다. 티비에선 나라의 국보 1호가 불에 타며 신음하다 지쳐 그만 무너져내리고 있었고, 며칠 뒤 시커멓게 타버린 그곳에 비로소 갔을 때 이미 모습은 볼 수도 없게 가려져 있었으며, 나는 언뜻 그곳에서 그로부터의 5년을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실로 힘겨웠던 5년이 가까스로 지나기는 했는데 다시 또 5년이 시작되려 한다. 

눈은 쉴 새 없이 내리고 기온은 나몰라라 끝없이 추락한다. 

희망을 보려 하지 않겠다. 기분을 제어하려고도 않겠다. 냉정을 유지하겠다. 


도봉산으로 가는 전철에서, 아버지를 보내고 



뭐가 그리 복잡했는지

나도 몰래 기다렸는지


중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산에 갈 때만 해도 등산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등산길에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언제나 인사를 하곤 했다. "안녕하세요.", "고생이 많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이제는 산에 오르는 일이 지나친 과소비와 유행으로 번져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도 했지만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문화가 돼 버려 나 또한 그 속에 일환이 되어 그저 묵묵히 산에 오르곤 한다. 


겨울, 설악산을 앞두고 체력 점검도 할 겸 오른 도봉산이었고, 모두 아이젠을 장착하고 돌을 짓누르는 경쾌하지 못한 소릴 내며 산에 오르고 있었다. 물론 나는 사실상 맨발이다. 아이젠 따위 내겐 없었고, 시간이 늦은 만큼 오르는 데까지 오르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물론 해가 지기 전에. 


얼마나 올랐을까, 추운 날씨 탓인지 사진을 찍으려 꺼낸 아이폰은 순식간에 멎어버렸고 다시 오르다 보니 마주친 어떤 아주머니께서 묻는다. "아이젠 있어요?" 내가 무시하고 다른 말을 하자 듣지도 않고 다시 묻는다. "아이젠 있어요?" 할 수 없이 답한다. "없으니까 그냥 올라오죠." 마침 길은 가파른 계단에 거의 온전한 빙판이다. 난간을 붙잡고 오른 터이고. 아주머니가 쏘듯 말한다. "당장 내려가요. 해 지면 더 미끄러워. 건강하려고 산에 왔으니 얼른 내려가." 


한 번도 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불안의 기운에 휩싸이고, 자칫 다음 주의 설악산을 망치기라도 할까봐 만월암에서 잠시 앉아 땀을 식히고 하산하기로 한다. 미끌미끌. 그렇지만 흥겨운 산행이었다. 


버스를 타고 아이폰을 녹여 앨범을 샀지만 잘 듣지 못했던 서교그룹사운드 1집을 들었는데 어라, 이렇게 괜찮은 앨범을 왜 이제서야, 하는 생각에 당시를 떠올려 보니, 거칠기만 했던 사운드가 약간은 풍부해지고 정제된 느낌이 어색했기에 부러 멀리했었던 기억이 났다. 


공연을 보긴 해야 할 텐데. 


보일러를 바꿨더니 겨울 특유의 건조가 찾아왔고, 이제서야 잠에서 깨 창을 열어 환기를 한다. 

아직 밖은 어둡고 고요하다. 


그래, 환기하듯 새해를!  


2013

곰곰 생각을 해봐도 지금 내 방의 가장 큰 장점은 밤이 깊어질수록 방안으로 가득 스며드는 달빛이라 할 수 있다. 저기 멀리 남산과 낙산공원의 성곽도 좋고, 종로타워와 에스케이빌딩의 기세도 좋지만 말이다. 


잠에서 깼다. 두 시 반에 한 번, 네 시 반에 또 한 번. 누워서 요 며칠 계속 드는 생각에 대해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1Q84를 읽어야 하나, 텝스 공부를 시작해볼까,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양장본은 대체 언제 나온 것이냐, 새해니까 수영을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겨울의 설악산은 어떤 모습일까, 외롭고 높고 쓸쓸한 영혼들아 바비빌을 들어라, 가끔 순식간에 밀려드는 뜻 모를 슬픔이여, 어른스러움과 그렇지 못함에도 경계가 있는 걸까, 레이블마켓에도 들러야 하는데, 마이블러디발렌타인이 내한한다고, 김목인 공연을 보고 싶지만, 주문한 신발이 (마음에) 잘 맞아야 할 텐데, 이번 겨울은 과연 미친 것일까. 


새해의 일기장을 새롭게 열며 '기분과 희망'이라 적었다. 


나는 지독한 근본주의자여서 불가능을 되게 하라 따위의 말은 무척 싫어한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가능하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는 게 먼저라고 생각을 하고, 근본적으로 안 된다고 판단이 서면 거기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아예 관심이 사라진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 과정에서 무수한 오류가 발생하지만 가급적 올바른 판단을 하려 많은 고민을 하고 공을 들여 사고를 확장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맞냐, 그렇지 않느냐. 확신 또는 불확신. 물러서게 되는 대부분의 순간들에 있어서의 비겁. 


연말에 하루키의 책 두 권을 읽었더니 갑자기 맥주가 생각났고, 어제는 빙판길에 맥주 여섯 병을 사오다 오피스텔 앞에서 정확히 ㄴ자로 자유낙하하는 여성을 보기도 하였다. 손 내밀어줄 겨를도 없이. 못본 척 지나쳤다. 창피함은 금물. 하루키를 읽으면 달리고 싶어지고 맥주가 생각이 나고 비틀스나 도어스 같은 음악이 떠오르기도 한다. 


채소의 기분, 으로 초밥과 미니 사시미를 물론 맥주를 곁들여 먹었고, 싱싱한 겨울 굴이라면 生으로도 가능하겠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그리고 소주를 마시며 말이 많아졌고, 이는 분명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며칠 나를 찬바람 속에 내몰게 했던 새 운동화를 해결했기에 너그러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전시가 끝나기 전 환기미술관에 다녀오고 싶은데 시간이 도무지 게으른 내게 틈을 주지 않는다. 물론 이 또한 지난 해부터 이어져온 소망이고 해를 넘겨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그나저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언제 개봉하는 걸까. 


엉뚱하게도 두 시 반에서 네 시 반 사이의 잠에서 지산락페스티벌이 열리는 리조트 앞에 있는 꿈을 꾸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켓을 구입하지 않았고, 누군지 모를 곁에 있던 사람이 돈도 많은데 바다에 가자고 해서 그러자고 하자마자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다들 잘 지내나요? 잘 지냈나요? 



그럭저럭 살고 있는 거죠. 기분과 희망을 안고. 


부재(不在)

길을 잃었다. 


멀리 왔다고, 허전하여

돌아봤더니 알 수가 없었다.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휘파람 소리, 울리던

끝없이 퍼지던 그곳에 

허공을 더듬었으나 스치는 건 

바람, 그리고 온기


아, 끝이 아니다

하여, 아, 

나였구나, 너는

아니었구나


잃었다, 길을



의미. 의미를 찾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방황하고 있다. 너, 너는 누구인가. 의미라 불리우는 너, 너는 누구인가. 나는 너를 찾아 헤매이었고, 결국 내가 찾아낸 건 절망이었다. 처음엔 그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절망을 희망으로 착각하고, 희망을 노래했다. 노래가 끝날 무렵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꿈을 꾼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희망을 노래하여 그것이 절망인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나는 너무 오래되었다. 이제와 의미를 희망을 찾는다는 말은 이미 낡아버렸다. 진부하다. 

부재(不在). 모든 것의 부재. 나 또한 있으나 없는 것과 같다. 부정(否定)은 부재의 다른 말. 나는 나를 오래전에 부정했기에 올바로 보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절망. 오로지 그것. 



청춘열차를 타고 춘천에 다녀왔다. 가는 동안,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선 끝도 없는 눈이 쏟아졌다. 


한 편의 영화 (2012)

1. 르 아브르 (2011), 아키 카우리스마키

2. 부러진 화살 (2012), 정지영

3. 네 멋대로 해라 (1960), 장 뤽 고다르

4. 달팽이의 별 (2012), 이승준

5. 맨하탄 (1979), 우디 앨런

6. 식코 (2008), 마이클 무어

7. 안티 크라이스트 (2011), 라스 폰 트리에

8. 자전거 탄 소년 (2012), 다르덴 형제

9. 송곳니 (2012), 요르고스 란티모스

10. 정복자 펠레 (1989), 빌 어거스트

11. 스카페이스 (1984), 브리이언 드 팔마

12. 코파카바나 (2011), 마르끄 피투시

13. 아비정전 (1990), 왕가위

14.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010), 백승화

15. 미치광이 삐에로 (2002), 장 뤽 고다르

16. 비포 선라이즈 (1996), 리처드 링클레이터

17. 비포 선셋 (2003), 리처드 링클레이터

18. 중경삼림 (1995), 왕가위

19. 쥴 앤 짐 (1961), 프랑수와 트뤼포

20. 몽상가들 (2005), 베르나르도 베르돌루치

21. 범죄와의 전쟁 (2012), 윤종빈

22.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1998), 제임스 L. 브룩스

23. 아이 엠 러브 (2011), 루카 구아다니노

24. 아티스트 (2011), 미셀 아자나비슈스

25. 달의 애인들 (1984),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26. 열혈남아 (1989), 왕가위

2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8), 코엔 형제

28. 파수꾼 (2011), 윤성현

29. 데드 맨 (1998), 짐 자무시

30. 오래된 인력거 (2011), 이성규

31. 이터널 선샤인 (2005), 미셸 공드리

32. 월-E (2008), 앤드류 스탠튼

33. 토리노의 말 (2012), 벨라 타르

34. 건축가, 나의 아버지 (2003), 나타니엘 칸

35. 차이나타운 (1974), 로만 폴란스키

36. 화차 (2012), 변영주

37. 밀월도 가는 길 (2012), 양정호

38. 대부 (1972), 프란시스 포드 코풀라

39. 줄탁동시 (2012), 김경묵

40. 디센던트 (2012), 알렉산더 페인

41. 말하는 건축가 (2012), 정재은

42. 시리어스 맨 (2009), 코엔 형제

43. 로맨스 조 (2012), 이광국

44. 법정스님의 의자 (2011), 임성구

45. 디어 한나 (2012), 패티 콘시다인

46. 윈터스 본 (2011), 데브라 그레닉

47. 더 프라이즈 (2011), 파울라 마르코비치

48. 새들의 노래 (2007), 알베르트 세라

49. 비밀의 문 (2011), 안젤리나 니코노바

50. 시티즌 랑글루아 (1995), 에드가르도 코자린스키

51. 시스터 (2011), 위르실라 메이에

52. 훌리오와 에밀리아 (2011), 크리스티안 히메네즈

53.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2011), 앙카, 빌헬름 사스날

54. 심플 라이프 (2011), 허안화

55. 로 라이프 (2011), 니콜라 클로츠, 엘리자베스

56. 직업의 코미디 (1988), 뤽 물레

57. 탕헤르의 유령들 (1998), 에드가르도 코자린스키

58. 녹턴 (2011), 에드가르도 코자린스키

59. 러브 픽션 (2011), 전계수

60. 아버지를 위한 노래 (2012), 파울로 소렌티노

61. 은교 (2012), 정지우

62. 멜랑콜리아 (2012), 라스 폰 트리에

63. 제7의 봉인 (1956), 잉마르 베리만

64. 오직 그대만 (2011), 송일곤

65. 다른 나라에서 (2011), 홍상수

66. 더 비지터 (2009), 토마스 맥카시

67. 개구쟁이들 (1957) + 앙투안과 콜레트 (1962), 프랑수아 트뤼포 

69. 아메리카의 밤 (1973), 프랑수아 트뤼포 

70. 나처럼 예쁜 여자 (1972), 프랑수아 트뤼포 

71. 야성의 아이 (1970), 프랑수아 트뤼포 

72. 밤과 낮 (2008), 홍상수 

73. 라스트 데이즈 (2006), 구스 반 산트 

74. 아델 H 이야기 (1975), 프랑수아 트뤼포

75. 부부의 거처 (1970), 프랑수아 트뤼포 

76. 화씨 451 (1966), 프랑수아 트뤼포 

77. 부드러운 살결 (1964), 프랑수아 트뤼포 

78. 녹색 방 (1978), 프랑수아 트뤼포 

79, 106. 미드나잇 인 파리 (2012), 우디 앨런

80. 쥴 앤 짐 (1961), 프랑수아 트뤼포 

81. 사보타주 (1936), 앨프리드 히치콕 

82. 400번의 구타 (1959), 프랑수아 트뤼포 

83. 도둑맞은 키스 (1968), 프랑수아 트뤼포 

84. 두 개의 문 (2010), 김일란·홍지유

85. 사랑의 도피 (1979), 프랑수아 트뤼포

86. 아주 특별한 여행 (2011), 세르주 브롱베르·에릭 랑주 + 달세계 여행 (1902), 조르주 멜리에스 

88. 미시시피의 인어 (1969), 프랑수아 트뤼포 

89. 피아니스트를 쏴라 (1960), 프랑수아 트뤼포 

90. 사랑을 카피하다 (2010),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91. 비련의 신부 (1968), 프랑수아 트뤼포 

92.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 (1971), 프랑수아 트뤼포 

93. 신나는 일요일 (1983), 프랑수아 트뤼포 

94. 포켓 머니 (1976), 프랑수아 트뤼포 

95. 국외자들 (1964), 장 뤽 고다르 

96.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 (1977), 프랑수아 트뤼포 

97. 마지막 지하철 (1980), 프랑수아 트뤼포 

98. 이웃집 여인 (1981), 프랑수아 트뤼포 

99. 배트맨 비긴즈 (2005), 크리스토퍼 놀란 

100. 다크 나이트 (2009), 크리스토퍼 놀란 

101.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2011), 해닝 칼슨 

102. 케빈에 대하여 (2011), 린 램지

103.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2001), 코엔 형제

104. 아리조나 유괴사건 (1987), 코엔 형제 

105. 다크 나이트 라이즈 (2012), 크리스토퍼 놀란

107. 바톤 핑크 (1991), 코엔 형제 

108. 카페 드 플로르 (2011), 장 마크 발리 

109. 머레이 페라이어 - 피안의 음악 (2010), 클라우스 비쉬만, 홀거-하인리히 프뢰스 

110. 캐슬린 페리어의 삶과 예술 (2012), 디안 페레스테인 

111. 항해자 (1924), 버스터 키튼, 도날드 크리습 

112. 서칭 포 슈가맨 (2011), 말릭 벤젤룰 

113. 트로피칼리아 (2012), 마르셀로 마샤두 

114. 퀸 - 우리의 나날들 (2011), 매트 오케이시 

115. 마리아치 그링고 (2012), 톰 구스타프슨 

116. 마지막 오디션 (2011), 우도 프린센 + 바스타곤과 무지개 공주 (2011), 마크 슐레겔 + 내 남자친구는 대머리 (2011), 마리아 복 + 스토롱거 (2011), 빅토르 로덴바크, 위고 베나모직 + 피아노 조율사 (2011), 올리베에 트레네 + 서든 데스 (2010), 애덤 홀

122. 세르쥬 갱스부르의 자화상 (2011), 피에르-엉리 살파티

123. 블루 발렌타인 (2010), 데릭 시안프랑스  

124. 클로저 (2004), 마이크 니콜스

125. 봄날은 간다 (2001), 허진호

126. 500일의 썸머 (2009), 마크 웹 

127. 비기너스 (2011), 마이크 밀스

128. 카모메 식당 (2006), 오기가마 나오코 

129. ...ing (2003), 이언희 

130. 안개 (1967), 김수용

131. 577 프로젝트 (2012), 이근우 

132. 라폴로니드: 관용의 집 (2011), 베르트랑 보넬로

133. 빙하를 따라서 (2012), 제프 올롭스키 

134. 시리어스 맨 (2009), 코엔 형제 

135.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2011), 사라 폴리 

136. 우디 앨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2012), 로버트 B. 웨이드 

137. 라폴로니드: 관용의 집 (2011), 베르트랑 보넬로 

138. 건축학 개론 (2012), 이용주 

139. 훌리오와 에밀리아 (2011), 크리스티안 히메네즈 

140.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2008), 부지영 

141. 세상의 모든 계절 (2010), 마이크 리 

142. 르 아브르 (2011), 아키 카우리스마키 

143. 히든 (2005), 미카엘 하네케 

144. 데미지 (1992), 루이 말

145. 사랑을 카피하다 (2010),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46. 사랑해, 파리 (2006), 구스 반 산트 외

147. 도가니 (2011), 황동혁 

148. 줄리 & 줄리아 (2009) 노라 에프런 

149. 미드나잇 인 파리 (2012), 우디 앨런 

150. 심플 라이프 (2011), 허안화 

151. 제5단계 (1997), 크리스 마르케

152. 아무르 Amour (2012), 미카엘 하네케

153. 환상의 빛 (1995), 고레에다 히로카즈 

154. 피아니스트 (2001), 미카엘 하네케 

한 권의 책 (2012)

1. 스티브 잡스 전기 (월터 아이작슨)

2. 기형도 전집 (기형도)

3.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4.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E. H. 카)

5. 지식의 권유 (김진혁)

6.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요시다 타로)

7.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8. 한자는 즐겁다 (박은철)

9. 부다페스트, 다뉴브의 진주 (김성진)

10. 필름 속을 걷다 (이동진)

11.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김수근)

12. 이 시대의 사랑 (최승자) 

13. 홀가분 (정혜신, 이명수)

14.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김원)

15.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16. 보통의 존재 (이석원)

17.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18.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19. 광장/구운몽 (최인훈)

20. 카프카 평전 (이주동)

21.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22.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23.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24.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25. 섬 (장 그르니에)

26. 헬렌 니어링, 또 다른 삶의 시작 (엘렌 라콘테)

27. 감정교육 (귀스타브 플로베르)

28.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상, 중, 하>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31. 마지막 숨결 (로맹 가리) 

32. 트뤼포,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앙투안 드 베크, 세르주 투비아나)

33.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에두아르 부바)

34.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35.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36.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37.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38. 정본 백석 시집 (백석) 

39.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40.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41.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 (이용재) 

42.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43. 건축, 사유의 기호 (승효상) 

44.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박범준, 장길연) 

45. 르 코르뷔지에 (도미나가 유주루) 

46. 루이스 칸 (마쓰쿠마 히로시) 

47. 김환기 (오광수) 

48.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49. 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 

50. 장준하 평전 (김삼웅) 

51. 침묵과 빛 (존 로벨)

52.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인숙) 

53. 일상적인 삶 (장 그르니에)

54. 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55.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56. 말 (장폴 사르트르)

57. 무진기행 (김승옥)

58. 동물농장 (조지 오웰) 

59. 태양의 후예 (알베르 카뮈)

60. 르 코르뷔지에 (장 장제르) 

61. 페스트 (알베르 카뮈) 

62. 간송 전형필 (이충렬) 

63. 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64.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 (유홍준) 

65.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66.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67. 프란츠 카프카 (편영수) 

68.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 2 (이용재) 

69. 일본이라는 나라 (오구마 에이지) 

70. 일본문화이야기 (유시민 편역) 

71.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영욱) 

72.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오영욱) 

73. 건축이란 무엇인가 (승효상 외)

74. 위풍당당 (성석제) 

75.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최순우) 

76.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77. 건축에게 시대를 묻다 (민현식) 

78.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 3 (이용재)

79. 홋카이도 전차여행 (방진원)

80.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81.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알베르 카뮈, 장 그르니에)

82.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

83.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 하루키)

84.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로맹 가리

나는 왜 로맹 가리에 대해 쓰는가. 

웃기는 일이다. 

나는, 우선 그를 잘 모른다. 아는 거라곤 그가 에밀 아자르란 필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 정도. 그리고 <자기 앞의 생>으로 한 명의 작가에게만 수여한다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는 정도. (로맹 가리는 이미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그리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정도, 가 전부다. 


지금 테이블 위엔 그의 유명한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놓여있다. 퇴근길에 이상한 유혹에 빠져 동네 도서관에 들러 빌리게 되었는데 그 책을 가방에 넣어 집으로 걸어오며 문득 로맹 가리에 대해 쓰고 싶단 충동에 휩싸였다. 


그를 알게 된 건 올해 4월, 전주영화제에서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자기 앞의 생>을 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단편집 <마지막 숨결>도 읽었다. <마지막 숨결>에 대한 인상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자기 앞의 생>은 여전히 강렬해, 주변에 책을 막 읽기 시작한 사람이 있거나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선물을 해주곤 했다. 벌써 올해만 서너 권. 


<마지막 숨결>을 읽을 때였다. 바삐 일을 하고 있었고, 일 때문에 찾아온 동갑인 (편의상) 친구에게 문득 나는 "로맹 가리 알아요?" 라고 물었다. 별 기대 없이. 그런데 그 친구가 "좋아해요." 그러는 게 아닌가. 오히려 그는 나보다 로맹 가리의 소설을 더 많이 읽었고, 이제 막 <자기 앞의 생>을 읽고 로맹 가리에 빠진 나보다는 최소한 더 충실한 로맹 가리의 팬이라 할 수 있었다. (그와의 대화는 이후 문학과 여행을 포괄해 광범위하게 확장된다) 


한두 작품은 인상 깊었지만 전반적으로 평이했던 <마지막 숨결>을 읽어서 그런지 이후 로맹 가리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유명하다고 하는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도 언젠간 읽게 되겠지, 하는 태연함으로 지내고 있었다. 다만, 늘 제목이자 문장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는 어떤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을 주곤 했다. 이상하니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문장인데, '죽는다' 가 아닌 '죽다' 라고 표현을 하니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로맹 가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이 되고 말았다. 


로맹 가리 자신이 그러했듯, 나는 <자기 앞의 생>을 에밀 아자르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싶기에. 


출판도시에서 열화당 책방에 갔을 때였다. 그곳은 정말 맘에 드는 공간이었다. 예술서적 전문출판사답게 고즈넉한 분위기에 다양한 서적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당초 책방이 직원들의 도서관으로 만들어진 때문에 책을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일일이 확인을 해서 한 권 이상 있어야 팔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2층에서 내가 <하늘의 뿌리> 초판본을 보고 집어들어 저기 아래 카운터에 있는 직원분에게 "이것도 파나요?" 라고 물었을 때, 그 분은 앞의 말에 덧붙여 "한 권 이상 있더라도 책을 봐야 판매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아니, 판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어쨌든 그곳에서 <하늘의 뿌리> 초판본을 보았더니 갑자기 로맹 가리를 읽고 싶단 충동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때 그 책을 사지 못한 이후 아직까지 <하늘의 뿌리>는 읽으려고 하지도 않은 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빌리게 된다. 


햇살이 곱게 드는 창가에 앉아 종일 로맹 가리나 읽었으면, 싶은 밤이다. 



리마로 오는 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청년시절 읽었던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소설 속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한 장 한 장 그리고 있었다.....

리마에서 북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해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사내. 아침이면 해변에 수북이 떨어져 죽어있는 새들. 마지막 파도가 밀려오면 곧 바다 속으로 사라질 듯 자살을 시도하는 초록빛 스카프의 여인. 해안으로 날아와 죽음을 맞는 무수한 새들 중의 한 마리처럼, 젖은 날개를 떨며 자신에게 다가온 여인을 안는 사내.

마흔일곱이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버린 나이이며,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라고 스스로 냉소하며 생을 환멸하던 이 사내는 그러나 다시 희망의 유혹에 빠져든다.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90) 셋

좋아하는 숫자가 무엇이냐, 누군가 물을 때면 그런 생각 별로 해본 적 없지만 습관적으로 3이라고 답하곤 했다. 하지만 단순한 숫자 개념을 넘어 사람이 만날 때 몇 명이 좋으냐, 누군가 물어온다면 그건 단연 세 명이다. 대답은 첫 번째 인도여행에서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굳건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어떤 좋았던 기억이 이후의 모든 경계를 넘어선 영역까지 지배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나의 믿음은 확고하다. 


인도에서, 우리가 세 명이 된 건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떠날 때였다. 일곱이었던 우리는 수많은 추억을 뒤로 하고 바라나시에서 흩어져야 할 터였고, 네팔에 가고자 했던 마음이 일치했던 우리 셋은 과감히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 당시의 나(3)는 한국에 돌아갈 시간만 유예시킬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았고, 막둥(1)은 먹구름(2)의 꾐에 넘어가 다르질링 행을 접고 우리와 합류하게 되었다. 적극적으로 히말라야를 봐야겠다고 우긴 건 전적으로 2였다. 아, 현혹의 대가여. 그렇지만 이제는 실체가 드러나버린. 

그렇게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함께했다. 일곱일 때부터 친다면 여행의 절반을 함께한 셈이었다. 


엄밀히 말해 1과 2 그리고 3은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단지 여행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늘 낯선 곳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라는 틀로 묶일 수 있었고, 그것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끈을 서로 서로에게 연결해 이후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도 언제든 당시의 '우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했고, 그렇게 우리는 지금까지도 당시의 추억에 거친 왜곡을 더해 그때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소위 맛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해도 셋이라면 메뉴의 다양성이 생기고, 4인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한다고 해도 한 자리의 여유만큼이나 넉넉한 분위기를 느끼며 서로의 의견 교환이 원활한 만남을 가질 수 있고, 언제든 서로 서로의 모습을 빗대어 보며 배움과 시기와 동기부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3이, 셋이 좋다. 

(91) 영화

인도를 여행할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인도의 극장은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곳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고, 비록 그들이 말하던 떠들썩하고 흥겨운 춤판이 벌어진다는 극장은 아니었지만 델리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멀티플렉스 뺨치는 극장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보게 된 영화는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도 정식 개봉을 했던 블랙, b.l.a.c.k. 


Black, 2005


특이했던 건 영화 중간에 뮤지컬이나 오페라공연처럼 쉬는 시간이 있고 그때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영화스토리는 간단해서 영어와 힌두어가 뒤섞인 영화였지만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같이 있던 동생은 훌쩍훌쩍 울음을 쏟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개봉을 했을 때 동네 극장에서 다시 영화를 봤지만 아쉽게도 당시의 감동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이후 또 한 번의 인도여행 때 갔던 쉼라(Shimla)를 영화 속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다. 

엇갈린 추억과 경험이 아련한 그곳의 정취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1층에 있는 뮤직숍에 가 영화의 감동을 사운드트랙을 사는 걸로 대신했다. 


영화를 지금처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아마도 대학로에 있던 '하이퍼텍 나다'를 알고 난 뒤부터가 아닐까. 

언젠가 그곳에서 영화 '원스'가 상영을 하는 걸 알았고, 극장에서 꼭 다시 보고 싶었던 그 영화를 보기 위해 나다에 처음 갔는데 아담한 극장 크기와 영화가 끝나고 오른편에 있던 커튼이 걷히면서 드러나는 장독대가 무척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극장에 비치된 각종 영화 정보들이 이후의 나를 나다와 형제 극장인 '씨네코드 선재'를 비롯한 다양한 작은 극장들로 안내했고, 세상엔 눈에 흔히 띄는 소위 상업영화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후 내 영화 관람의 패턴은 완전히 궤를 달리하게 된다. 

아, 당시의 '원스'를 재상영했던 프로그램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나다의 마지막 프러포즈'였다는 거. 그리운 나다. 


내가 사랑하는, 

지금은 없어진 대학로의 '나다'와 명동의 '중앙시네마'를 비롯해, 광화문과 종로 일대의 '서울아트시네마', '씨네큐브', '씨네코드 선재', '스폰지하우스', 이제 '인디스페이스'로 이름을 달리한 '미로스페이스', 이대의 '아트하우스 모모', '필름포럼', 홍대의 '상상마당', 그리고 동네에 있는 '아리랑시네센터', 고대의 '시네마트랩', 압구정과 대학로의 '무비꼴라쥬'... 

작은 극장들.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상업영화가 외면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게 작은영화들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지만 여전히 아쉬운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작은영화, 즉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라 불리는 것들을 매우 어렵거나 몹시 따분한 것으로만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데 


늘 그런 극장에 가면 일반 멀티플렉스 극장과는 달리 한적한 분위기가 더욱 일상적인데 가끔 그 넓은 씨네큐브 1관이 가득 찰 때면 되려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이 또한 물론 이기와 가까운 감정인데, 왜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수의 것이 다수의 것이 되길 바라면서도 막상 그러한 상황이 되면 기꺼이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이는 국카스텐이 예당과 전속계약을 하고 '나는 가수다'에 출연을 하며 전국적 이목을 끌게 된 상황과 유사하다. 말하자면, 나는 작년 지산에서의 (물론 지금과 같이 자신만만했던) 국카스텐이 더 좋은데 하는 이기의 감정 같은 것. 


하지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듯, 늘 변화를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비록 그것이 나쁘거나 불편하거나 엉뚱한 방향이라 할지라도. 세상은 녹록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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